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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tro...

    열의 깊은 물속 길은 알아도,한 사람의 앞길은 모른다는 처음 듣는 말이 있지요. *^^*

    사람의 미래는 정말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짧고도 깊은 얘기를 들어 보시겠어요?

2. Sungjin&Esther, We are...

    모태신앙으로 자란 크리스챤입니다. 그것도 같은 교회에서요. 지금도 참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렇게 오래도록 같은 교회를 다녔으면서 서로 안면은 전혀 없는 사이로 통성명을 하고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95년도의 여디디야 편집국원들의 모습(해운대에서 대학부 전도수련회때)어쨌든 주님안에서 오빠를 만나게 된 것은 참 기쁜 일이예요. 우린 ‘여디디야(YDDA)’라는 대학부내의 문서팀에서 함께 봉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3살의 나이차를 가지고 있구요. 제가 처음 여디디야에 들어 왔을 때, 오빠는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멋진 군인이었지요.

    사실 그땐 멋진 군인인지, 처음 들어온 새내기인지 서로에게 통 관심들이 없었답니다. 얼굴은 알아도 정확한 이름도 모르고 얘기도 해보지 않은, 길거리를 지나다가 마주쳐도 반갑게 인사하기엔 어색한, 그런 사이였지요.

    그렇게 휴가때마다 의례적으로 잠시 보게 되는 얼굴을 매주 볼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역시 오빠의 제대 때문이었습니다. 제대 얼마 후 오빠는 편집국장의 자리에 서게 되었고, 저는 오빠를 자주, 그리고 잘 지켜볼 수 있게 되었죠.

3. First, Observation...

    제가 군시절(병장)때 웃으며 찍은 사진. 이걸로 지방의원 선거를 했었지요.오빠를 참 무서운 사람으로 생각했었어요.

    갓 군에서 제대해서 기합 빵빵했죠, 원래 불같은 성격인데다가 말투는 늘 ‘~할 수 있도록!’이라는 명령조였으니까요. 오빠 주변의 동기들이나 선배들 외엔 모두들 오빠를 어려워 했답니다. 실수하면 면박도 곧잘 주곤 했거든요.

    이러한 것들은 오빠를 만나기 전 국장의 모습으로 있을 때, M.T와 교회의 수련회 때의 보여졌던 것들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특이하고도 재밌는 행동으로 유심히 지켜보던 선배였지만 한때 수평선처럼 만나지지 않는 서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이였습니다. 정말 그랬었지요...

4. Telephone Call...

    이런 우리들이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전화였습니다. 국장의 위치에 충실하기 위해 오빠는 국원들의 근황을 세세히 알려했고, 저도 그 국원중의 하나였죠.

    잘 몰랐던 오빠와 통화를 하게 되면서 제가 오빠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순수하고 따뜻한 정도 많으며 사리에 치우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죠.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그런 모습에 반하여 오빠를 마냥 좋아하게 된 것도 그때 부터였어요.

5. Meet Him/Her...

    처음엔 오빠도 그냥 동생처럼 대해 주다가 저의 예기치 못한 적극적인 태도에 ‘넌 아직 어리다’, ‘나 만나면 고생한다’라는 약간 협박같기도 한 말로 거절을 표현했었지요(정말 후회할 짓이지요. 안그랭? *^^*).

    그러나!! 서경석이 황진이에 안넘어 간다 하여도, 이성진이 송에스더에게 안넘어 갈 재주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린 어느덧 매일매일 얼굴보며 서로의 애를 다지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6. The Problem!

    하지만 양지곁엔 응지가 늘 있는 법이지요. 우리들의 행복옆에도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오빠의 유학문제였지요.

    우리가 만나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던 것이었습니다. 2000년 1월경에 떠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구요. 많이 슬펐지만 우리는 1999년 끝날, 우리의 만남을 매듭짓기로 약속했었죠(정말 슬프죠...).

    그치만 정이 깊어가면 깊어갈 수록 우린 그 약속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맘대로 *^^*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좀 어리다는 거였죠. 공부도 아직 끝내지 못했으니까요. 그치만 우리에겐 ‘무대뽀’라는 갸륵한 정신이 있었습니다. 기가 막히다는 듯이 제 얘기를 들으신 우리 엄마는 ‘그래, 해!’하시며 완벽하게 우리의 결혼얘기를 일축해 버리셨지요.

    짐작컨대 ‘저러다 말겠지’라는 간단한 생각을 갖고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쪽 부모님들에게 매달렸습니다.

    오빠는 어머님에게, 나는 우리 어머니에게... 그렇지만 정말 우리들의 희망사항일 뿐이었습니다. 할아버님께서 우리의 얘기를 알게 되시기 전까지는요... *^^*

7. Acception...정말정말 자상하시고 사랑스러운 우리 할아버지/지금은 몸이 많이 않좋아 지셨지만 우리들을 위해서 많은 애를 써 주셨다.

    그렇습니다! 바로 할아버님께서 우리의 얘기를 오빠의 어머니를 통해 들으시고는 ‘추진하라우!’라는 한마디를 가볍게 던지셨던 것입니다.

    그 가벼운 한마디는 모두에게 ‘결혼 인정 하라우!’로 연결되어 우리는 양가 부모님께 예비 사위, 예비 며느리로 인정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8. go to Wed 2000!

    보스톤의 Emmanuel College여기서 우리는 1년동안 어학연수의 과정을 밟는답니다.그래서?

    우리는 양가 부모님의 상견례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결혼을 인정 받았고, 결혼 후에는 바로 보스턴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로 했답니다.

    지금은 수속이 다 끝나가고 있구요. 한창 결혼 준비중이랍니다.

    정말 결혼이라는게 쉬운것이 아니더군요. 두 가정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관계를 맺는 거니까요.

    자칫 오빠홀로 떠났을 지도 모를 길을 정말 함께하게 된거죠.

9. If... (Epilog)

    저희는 결혼해요!!!지금도 소름이 끼친 답니다.

    만일 우리가 약속대로 1999년 12월 31일에 헤어져 서로의 길을 갔다면? 알 수 없죠.

    다시 만났을 수도, 영원히 다른 길을 걸을지도...

    그 약속을 깰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 것도 감사하구요~!

 


 성진과 에스더의 이쁜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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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홈페이지는 2000년 4월에 최종적으로 갱신되었습니다.